2010년 3월 20일 토요일
사람 잡는 게임 MANH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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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HUNT의 껍질
먼저 ‘맨헌트’가 어떤 게임인지를 간단히 설명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 게임의 배경과 플롯은 80 ~ 90 년대 B급 헐리우드 폭력 영화의 것을 상당부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사형수 ‘제임스 E 캐쉬(James E Cash)’로 전기의자에서 사형이 집행된 뒤 외딴 건물에서 깨어나게 된다. 폐허가 되어 격리된 것으로 보이는 이 지역에는 여러 가지 흉기로 무장한 갱단들이 지키고 있으며 ‘캐쉬’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사설 군대까지 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권력가에 의한 인간 사냥 게임. 주인공은 이들을 살해하고 여기서 빠져나가야 자유를 얻게 될 것 이라는 권력가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안을 받아 들인다.
그러나 그 지역을 빠져나가도 자유는 없다., ‘미안하네 거짓말한 것이었어’라는 권력가의 목소리와 함께, 캐쉬는 군인들에게 린치 당하고 무장해제 당한 뒤 다시 다른 지역으로 옮겨진다. 여기에는 새로운 갱단들이 지키고 있다. 이 갱단들은 마치 월터힐 감독의 유명한 컬트 영화 ‘워리어즈(Warriors)’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파시즘의 강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권력가는 이들 갱들을 경멸한다. 메탈기어 솔리드에서 통신하는 것처럼 귀에 직접 얘기하는 무전기를 통해 캐쉬에게 여러 가지 충고를 주며 그 갱들을 살해하도록 조종하고, 곳곳에 장치된 CCTV를 보며 즐긴다.
MANHUNT의 알맹이
플롯만 보자면 매우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저 이야기와 언론에 노출된 일부의 갱단에 대한 스크린샷을 보았을 때, 이 게임은 80 ~ 90 년대의 문화를 향유했던 세대들에게는 세기말적인 폭력의 판타지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할 수 있을 테고,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나고자 주말의 몇 시간을 비디오게임으로 안전한 모험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생존 게임의 가장 극단적인 면’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허나 그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들여다보자면, ‘맨헌트’는 상당히 단순화 시킨 스프린터 셀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곳에 숨고, 레이다를 통해 보초들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뒤로 몰래 접근하여 숨통을 끊는다. 간혹 소리를 내거나 전기를 끊어(포르노를 못 보게 하여 짜증을 유발하는 식으로) 유인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게임 플레이만 놓고 본다면 흔히 잠입 액션이라는 장르로 구분되는 형태인데, 일반 대중을 의식해서인지(게임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는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간단한 조작 만을 요하게 되어 있으며, 게임의 전략이라는 것 또한 단순히 ‘뒤를 보고 있을 때 몰래 가서 버튼을 누른다‘라는 정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단순한 게임 플레이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목적이었는지, ‘맨헌트’는 이것을 포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미디어의 표현방법을 동원한다. 그렇게 믹스된 결과는 제작자들이 의도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지만, 예상하였던 것 이상의 정서적인 해로움이 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러하다.
무엇이 해로운가
나는 발매 전에 공개된 일부의 스크린샷에서 보여준 CCTV로 보는 듯한 살인 장면, 그리고 그것이 주는 스너프 필름의 뉘앙스를 보고 ‘과연 록스타가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철없는 상업주의의 광기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할 있을까’에 대해 몹시 궁금해 했다. 그게 내가 ‘맨헌트’에 가졌던 관심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결국 ‘맨헌트’를 구해 이제 약 5 ~6 시간 플레이 해보았다.
단도직입 적으로 말하자면 이 게임은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며, 그러한 결과에 상당히 무책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게임은 시작하면서부터 살인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비닐 봉다리를 주워서 얼굴을 틀어막고 질식사를 시키라고 시킨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씩 계속 죽여야 한다. 말은 몰래 숨어 다니며 탈출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게임에서 살인을 피하기는 거의 힘들다. 대부분 해당 레벨의 적을 모두 죽여야만 다음 레벨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목소리는 계속 지시를 내리며 플레이어가 살인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에서 찬사를 보낸다. ‘자네 정말 타고 났어… 예술이야’.
많은 연쇄 살인자들이 내가 죽인 것이 아니고 ‘머릿속의 누군가가 시켰다. 그 목소리가 시켰다’ 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권력자’의 목소리는 계속 플레이어의 귓가에 맴돈다 ‘죽여 캐쉬, 죽여! 지금이야’ 죽여!... 내가 가책이나 망설임 없이 칼로 녀석의 목을 따버릴 수 있도록 목소리는 옆에서 자꾸 나를 재촉하고 부추긴다. 그리고 조작에 따라 좀더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으며 이런 패티쉬(Fetish) 포인트를 얼마나 따내느냐에 따라 숨겨져 있던 특전의 보너스를 볼 수 있는 가의 여부가 결정된다.
나는 (물론 직접 해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거지만) 이 게임을 통해 연쇄 살인의 대리 체험이 어느 정도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가슴이 조마조마 하고, 죽인 후의 흥분과 가라앉음의 죄책감 같은 묘한 감정이 있었지만 몇 번의 살인을 거치고 나면 감정은 별로 자극적이지 않으며 매우 덤덤해진다. 그저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그리고 이쯤에서 게임이 점점 지루하고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무척 의미심장한 일이다.)
정리해보자, 나는 아직 실제로 사람을 해쳐본 일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맨헌트를 통해 몇 가지 깨달은 것은 있다. 살인이 처음과 2번째 정도만 어렵고 짜릿하지만(?), 이후에는 별 것 아니다 라는 말이 어떤 감정의변화를 의미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만의 하나 살인을 하게 된다면, 권력자가 말해준 것 같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지금이야, 내리쳐! 지금) 솔직히 내가 의도한 살인은 아니었다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한 것 뿐이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것처럼 이놈들은 죽어 마땅한 쓰레기 놈들이다.)
물론, 다른 게임에서도 살인은 많이 등장한다. Mature 등급의 게임에서 대량학살과 시체 훼손은 흔한 일이다. 쉴새 없이 ‘놈들’을 향해 총을 갈겨야 하고 찌르고 두들겨 패야 한다. 놈들은 죽어 마땅한 쓰레기 놈들이다. 왜 ‘맨헌트’만 가지고 해롭다고 하는가?
문제는 다른 게임들은 살인 그 자체가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폭력 게임들은. 폭력 영화의 주인공이나 전쟁의 영웅 같은 폭력의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살인 체험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사실 여기서의 살인은 타깃을 맞추는 행위에 그저 타깃이 사람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물론 이것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맨헌트’의 문제는 살인에 직접적인 게임의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배경이야기와 플롯은 그저 연속적으로 살인을 대행하도록 강요하는 내러티브를 정당화 시키기 위한 핑계거리의 제공에 불과하다.(그나마 게임 내에서는 거의 플롯이 없다)
그저 연속적으로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야 한다. 좀더 많은 적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도록 다시 도전하고. 무기를 바꿔 죽이고 멋진 장면으로 죽이는 것을 감상한다. 몰래 죽이지 못한 적은 격투를 벌이고,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적을 쫓아가… 바닥에 쓰러져 낑낑대며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의 머리통을 야구방망이로 부숴버린다. 이미 플레이어도 탈출하면 다시 잡혀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심사는, 어떻게 새로운 흉기를 습득하여 새로운 놈들을 놈들의 동료들 몰래 하나하나씩 죽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어떻게 적을 제압하고 레벨을 클리어할 것이냐 와 같은 고전적인 주제로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맨헌트’는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 살해하고 그것을 감상할 것인가라는 금기의 주제로 플레이어를 이끈다.
(그리고 그걸 거부하고 벗겨내면, ‘초보자를 위한 스프린터 셀’만 남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게임 자체의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더 다루지 않도록 한다)
가학적인 자극의 도구로 사용되는 살인
누가 누구를 사냥하는가?
‘맨헌트’는 인간 사냥꾼들을 피해 생존하기 위한 투쟁의 게임이 절대 아니다. ‘권력자’가 조종하는 주인공이, 역시 권력자의 상금을 바라고 모인 갱단을 사냥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캐쉬를 조종할 때는 그의 역할을 맡고, 몰래 살해하는 것이 성공하였을 경우 CCTV로 확대된 살인의 스너프 필름을 볼 때에는 권력자의 시각이 되어 그의 새디스틱한 감정을 같이 느낄 수 있다. 심하게 고어한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끔찍한 비명소리와 카메라에 격렬하게 튀는 희생자의 검붉은 피를 보면 충분히 살해현장을 목격하는 흥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흥분은 점점 약해지고 우리는 좀더 강한 자극을 느끼고 싶어한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내재된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것이라고 관대하게 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스너프 필름은 단지 찍는 순간에 사람을 죽이게 되어서 윤리적인 비판을 받는 것인가? 만약, 특수효과 만을 사용하여 인간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가학적 영상을 반복하는 영화가 있다면 그러한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다가 ‘맨헌트’는 인터렉티브한 미디어이기도 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본다) 일반 오락물이나 작품성 있는 대작 영화/만화/게임 등에서도 이미 어느 정도 가학적 코드가 있었다 라는 반론으로 희석될 수 있는 문제인지, 유저의 수용력에 책임을 넘겨도 되는 것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솔직히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폭력적인 문화와 나
오해가 있을 지 몰라서 짧게 밝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패니메이션은 ‘북두의 권’이다. 나는 과거에 B급 호러영화와 컬트 폭력물, 하드고어(Hard-Gore)의 예찬자였고, 지금도 호러와 소프트한 고어를 좋아한다. 내가 쓴 소설이나 게임에서도 고어한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게임의 경우에는 심의 때문에 직접적인 표현은 피했다.)
나는 고어의 ‘카타르시스를 의도하는 비현실적인 사용’과 ‘리얼리즘을 강조하기 위해 차용’하는 두 가지 수단 모두 찬성하고 실무에 응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맨헌트’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는 것이, 그러한 비주얼이나 단지 폭력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님을 밝힌다 (또한 나는 그 게임 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소재의 뛰어남 때문에, GTA 더블팩도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
카타르시스라는 면죄부
나는 최근의 폭력적인 대중 예술들이 ‘폭력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언제까지 면죄부로 쓸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개발자나 유저들이 간혹 잔혹한 표현 방법이나 반사회적이고 권악징선적인 폭력의 주제에 매우 관대한 것을 보게 된다(나 또한 물론 그러하다.)
그건 아마 검열과 통제된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과정에서 (gore적인 현상과 영상에 대한) 사실의 은폐와 표현의 왜곡에 대해 반발 심리로 작용하는 거라 생각한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고, 정말로 다른 이를 샷건으로 얼굴을 계속 쏘면서 즐길 테다(이 얘기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실제로도 아무 가책 없이 그럴 수 있다는 의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신병동에 감금하여 치료가 끝날 때까지 사회에 풀어놓으면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겠다.
우리의 사회는 그런 규칙을 지켜가며 생존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구금시켜 놓더라도 맨헌트를 맘껏 플레이하게 놔두는 것이 절대로 치료에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기를 해도 좋다.)
사실 맨헌트 자체가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잠입액션 게임에 조금 더 자극적인 살을 입힌 것으로 생각하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게 극적인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게임이다, 즐기는 것이다, 내부의 폭력성을 게임으로 풀기 위함이다, 어차피 사람 죽일 놈들은 이거 안 해도 사람 죽인다 라는 관대한 의견의 비호 속에 인간의 살상을 즐기고 가치관의 혼돈을 가져올 대중 예술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이든 기준이 있고 그 한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한계가 감상적인 관용으로 덮어져서 나중에 심각한 폭주로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맨헌트’에서 보여진 위험성이 극단적인 상업예술 지상주의의 끝이 아니라, 이제 보이기 시작한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싶다.
마지막 걱정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직까지도, 해로운 게임(다른 문화도 통틀어 말할 수 있다)과 새가슴들에게만 해로운 것으로 보이는 게임의 잣대를 확실히 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에 ‘맨헌트’를 만들었다면 반대의 주장을 펼 수도 있다. 이걸 하고서 살인을 저지를 놈이라면 원래 살인을 저지를 놈이다. 그 놈에겐 그게 ‘맨헌트’가 아니라 ‘켈로그 콘프레이크라’도 상관없었을 거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희생자가 나라면 어떨까?
옆집에 정신 치료를 마치고 온 남자가 이 게임을 한다. 그리고 게임을 꺼도 귓속에는 권력자의 목소리가 남아있다. 그리고 내가 출근한 사이에, 게임에 나온 대로 밧줄을 양손으로 잡고 내 가족의 등 뒤에 접근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촬영하여 비디오로 보관한다면(맨헌트의 로딩 화면처럼) 그리고 내가 퇴근 할 때 등뒤에서 유리 조각으로 목을 찌른다면? 그리고 놈은 법정에서 주장한다. ‘그가 시켰다. 찔러! 지금이야! 라고’
물론, 나는 저승에서 그 녀석이 범행을 저지른 것은 게임 때문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는 갖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다른 영혼들이 ‘그래도 게임은 많이 팔렸잖아’라고 위로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친척이나 남은 가족이 퍼블리셔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다 (물론 패소할 확률이 높지만)
마지막의 기우를 극단적인 예로 빌어 말해보았다. 보면서 웃었을지, 비약이라고 기분 나빠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나의 개똥 철학으로 마무리를 짓자면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게임이 절대로 (실제의)사람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 이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 ‘맨헌트’는 충분히 사람에게 유해한 게임이며, 대중문화의 수혜자로서 그리고 공급자로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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